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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행군이 힘든 이유
행군은 인티라이미 축제의 태양을 기다리는 의식과 같다. 태양을 기다리는 의식이 축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것처럼 행군 역시 훈련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보병 -으로 대표되는 육군-의 정체성을 그 성원들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행군 코스의 길이와 지형의 난이도는 부대 및 지휘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그 차이에 따라 당 부대의 호오가 갈리기까지 할 정도이다. 마치 재테크를 위한 부동산 투자와 같다고 할까. 다만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 부대의 행군을 경험할 수 없기에 모든 병사들에게는 자대의 행군이 가장 힘들거나 힘들었기 마련이다.

아무려나 전군에서 가장 힘든 자대의 행군 중에서도 유격 행군과 혹한기 행군은 단연 독보적이며, 세간에서는 훈련 그 자체보다 그 행군이 힘들다 이야기되어지기도 한다. 행군이 힘든 이유는, 밤에 먼 거리를 끊임없이 걷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른바 감각 차단성 경험이라는 것이다.

행군은 대부분 밤에 이루어져 행군 중에는 바로 앞 사람의 발 뒷굼치나 방탄헬멧을 볼 뿐이며, 행군의 출발 때 외치던 격려 구호도 두 시간 정도면 시들해지고 조용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호와 감각이 지나치게 단조롭거나 정지해버리면 감각이 차단되어버리고, 뇌는 각성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여 집중력이 점점 저하되고 의식의 범위가 좁아지며 최종적으로 의식 자체가 변질되어버리고 만다. 이 상태에서 체험자의 체력은 점점 소진되며 결국 탈진상태에 이른다. 감각의 차단과 육체적 탈진, 그리고 혼자 걷고 있다는 정신적 고립감은 행군자의 시간 감각을 완전하게 박탈해버리게 된다. 이로 인해 행군을 하는 각 개인은 무한한 시간(?)을 체험하게 되고 ‘멍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걸었다.’, ‘죽을 똥 말 똥 걸어도 끝이 없더라.’ 따위로 대표되는 끔찍이 괴로운 행군이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모든 국군 장병들이 행군을 싫어하는 이유일 게다. 이점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 수십만의 병사들은 행군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갖가지 묘책을 짜내고, 시도해 보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요원한 상태이다.

본 작성자 역시 행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으며, 이를 측은히 여긴 존경할 만한 한 선배께서 조언을 해주신 바 있다. 요령인즉, 무한 반복하여 들을 수 있는 곡을 정해두고 이를 행군 중에 계속 떠올리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힘들고 지루한 상황을 용이하게 보내게 되는 것이다. 조언을 해 주신 선배께서는 유격 행군 중 서광이 비추듯 갑자기 머리에서 ‘My Heart 言い出せない,Your Heart たしかめたい’(주1)가 떠올라 무한 반복된 덕에 고통스러운 행군을 무난히 보낼 수 있었다고 하며, 이때 체득한 이 요령을 통해 남은 군 생활에서의 행군을 그리 고통스럽지 않게 마칠 수 있었다 전해지고 있다. 본 작성자 역시 이 체험에 깊은 감명을 받고 세심하고 진지한 숙고 끝에 무한 반복하여 연상시킬 만한 곡인 ‘뒷골목의 우주소년’(주2)과 ‘Underground’(주3)를 선정하고는 행군 중 자연스럽게 연상시킬 수 있도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였다. 하지만 여러 방면의 노력과 착안에도 불구하고 행군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머리를 떠돌던 음악은 몹시 유감스럽지만 ‘My Heart 言い出せない,Your Heart たしかめたい’였었다.



*주 1: 90년도 초반 등장했던 여신님 OVA의 주제가. 세론에 따르면 당대의 명곡이라고 하는데, 개인으로는 당시에도 상당히 기괴했으며 지금 생각해봐도 몹시 기괴한 음악. 아마도 그 독특한 오프닝 덕에 그런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름.

*주 2: 다이가드의 주제가. 코브라 트위스터가 불렀음.

*주 3: 타카피가 99년에 발표했던 싱글 앨범의 타이틀 곡. 음악도 좋지만 뮤직비디오가 상당히 굉장했다. 덧붙이자면 부클릿에 적혀있는 가사가 실제 곡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점이 혁신적인 앨범이었음.










에에....주제를 잡지 않고 작성하다보니 행군이 보병의 상징이라는 건지 힘들다는 건지 여신님 주제가는 도저히 애매하다는 건지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오랫만에 두서없이 중얼거릴 수 있어서 재미었었습니다. 정진하여 무상전생으로 조크를 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옙.
by Tanzwut | 2006/01/19 23:09 | 잡문록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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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伏魔殿 at 2006/01/20 09:31

제목 : 애니 주제가의 효용
행군이 힘든 이유 은근슬쩍 구경만 하던 Tanzwut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자세한 내용은 Tanzwut님 블로그에서 확인하시고(어이-) <span class="AUTH......more

Commented by 극악 at 2006/01/20 00:30
야간행군보다 왠지 주간행군이 힘들었던거같은건...^^;
My Heart 言い出せない,Your Heart たしかめたい 이글을 읽으니 또 듣고 싶어지네요~ 하드디스크 어디에 숨어있더라...?
Commented by Taliesin at 2006/01/20 01:33
저 때는..행군루트 중간에 용주골이 있었습니다.(먼산)
뭐..그랬다는 거죠..
Commented by 벨로린 at 2006/01/20 08:26
... 여신님 주제가는 오묘하다는 것이겠지. :)
Commented by 카샤 at 2006/01/20 09:26
간만에 옛날 생각이 나네요. 트랙백 해 갑니다아-
Commented by 그대와둘이서 at 2006/01/20 10:00
군대에 가보지 않은 저로서는 행군의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히 짐작이 되질 않는군요.
다만...날씨가 따뜻해지길 기도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렉스 at 2006/01/20 10:01
같은 길을 두번 이상 마주치는 루트 반복도 악몽이지요.
Commented by 시대유감 at 2006/01/20 17:46
여신님은... 이젠 작품 자체가 괴작이 되어버려서요.
Commented by 선배A at 2006/01/20 22:23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연상 중이었다면 곡이 끝남과 동시에 에바 1화가 리플레이 들어가서 .. 실시간 재생 .. 아직 13화도 마치지 않았는데 행군이 끝나버려 아쉬웠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 베르단디양과 잘 걸어가고 있는데 왜 벌써 행군이 끝나 버리는 거야... 라는 ..
주제가와 고도의 싱크로를 통해 무상전생의 경지에 들어가면 일어나는 이른바 현실 도피형 지각의 전뇌화 현상이란 것이지요.
Commented by 영원제타 at 2006/01/21 22:43
그러니까 군인에게는 여신님이 필요하다는 것이로군요.
Commented by Tanzwut at 2006/01/22 01:47
극악님/ 에....주간 행군이라는 것이 이 동네에서는 전혀 전례가 없던 일이라 체험해보지 못했기에 감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뭐어, 주간행군을 하게 되면 또 포스트의 내용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Taliesin님/ 옙, 저 역시 비슷한 루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게지요.

벨로린선배/ 또 무한반복되어버려 죽겠습니다;

카샤님/ 이게 현재가 되어버려 몹시 괴롭습니다. 전직을 바랄 뿐이랄까요.

그대와둘이서님/ 옙, 어떤 위로보다도 가장 감동적인 말씀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렉스님/ 15km를 걷고는 그대로 같은 루트를 걸어 복귀해버렸습니다.

시대유감님/ 워낙 원작의 위치가 확고하기에 그런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것은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요.)

A선배/ 에에...그게 저 같이 미숙한 경지에서는 요원한 일이라서요. 하루라도 빨리 수행을 쌓아 무상전생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어제의 행군에서도 또 여신님이 반복되어버렸습니다. 죽겠습니다;

영원제타님/ 군인에게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핫패드와 맛다시가 필요합니다.(진담)
Commented by 김모씨. at 2006/01/23 19:27
음 전 잠자기 전에 한번씩 congratiration. (여신님 엔딩곡) 을 듣고 잠자던 시절이 있어서 .. 전 행군때. ako의. 화이트 앨범 엔딩곡 무한반복으로 한 기억이.. (그나마 한번... 두번째는 걸어가다 끌려왔죠.. 지통실 인원이 어딜 가냐고... ) 운항병이라;;
Commented by 김모씨. at 2006/01/23 19:28
근데 쓰고보니 어디서 많이본 그 아이뒤자나;; 설마 .. 그 ㅂㅌ강사.. . . 근데 당신은 장교자나.. 뷁.
Commented by Tanzwut at 2006/01/24 23:19
아니, 그러니까 말이지요....... 그러면서 무슨 군대가는 후배에게 겁을 줍니까 겁을; 아무려나 휴가때는 어인일로 전화도 아니 받으신 겁니까. 보여드릴께 조금 있었는데 유감천만입니다.

아, 그리고 소생에 대한 묘사의 70%는 틀리셨습니다. 사실 소생의 정체는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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