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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정치적으로 바른 흥부와 놀부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여성에게 다소 불리한 비민주적이고 봉건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던 때에 흥부와 놀부가 살았습니다. 흥부는 게으름을 즐기지만 자기만족이 심한 성격이었으며, 놀부는 자신의 반사회적인 경향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는데 재능이 있었고, ‘소유 한다’라는 부분을 평균 이상으로 강하게 생각하는 부르주아적 관념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 뒤, 놀부는 그의 유능한 변호사와 상의하여 유언의 불분명한 부분을 최대한 유리하게 해석하였습니다. 그 덕에 기업형 목장과 언론사의 주식을 차지할 수 있었고, 흥부에게는 짚으로 지붕을 올린 웰빙형 전원주택 한 채가 주어졌습니다. (막대한 상속세와 함께 말입니다.) 흥부는 놀부에게 자신의 정당한 몫을 받아 유언의 해석과 유언장 검인에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호소하였으나 놀부는 그것은 변호사들이 해결한 문제라고 하며 그의 호소를 무시했습니다. 흥부는 이 말을 진지하게 고려해보았고 결국 소송을 걸었습니다.

재판당일 먼저 놀부의 변호사가 일어나 산더미 같은 자료와 증언을 인용해가며 임표가 정강산에서 홍위군을 지휘할 때와 같은 감동적인 변론을 하였습니다. 변론이 끝나자 법정의 모든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습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흥부의 국선변호사 (흥부는 막대한 상속세를 납부하느라 변호사를 고용할 여유가 없었습니다.)가 일어나 길게 하품을 하고는 입을 열었습니다. ‘저의 의뢰인은 유산의 분배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여러분도 짐작하시듯이 흥부는 참패하였고 재판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대부분의 재산을 날렸습니다. 남은 것은 아버지가 물려준 전원주택 한 채 뿐이었습니다. (흥부는 그가 가진 과도한 남성성의 발로로 인해 수많은 미성년 자녀들을 두었지만 당시의 여성에게 불리한 비민주적 봉건적 가치관으로 볼 때에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기에 다산장려금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놀부가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사업방식으로 승승장구하며 그의 재산을 증식시킬 때 흥부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건전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려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소비심리의 악화와 자본주의 체제의 요구, 특히 그 빌어먹을 국민연금이 끊임없이 그의 생활방식을 위협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흥부는 놀부의 자비심에 호소해볼 요량으로 형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자, 여기서부터는 많은 우연이 겹치게 됩니다. 흥부가 형의 집에 찾아갔을 때 마침 그 날 놀부는 방범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었고, 대문 역시 같은 이유로 잘 닫혀있지 않은데다가 경비원들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습니다. 불행히도 흥부는 이 상황을 자신이 출입을 허가 받은 것으로 잘못 알았고 정문을 통과하여 가택 침입을 하게 되었고 정원에서 놀부의 배우자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불의의 침입자에 심하게 놀랐습니다. 이에 무의식중에 손을 앞으로 내저었고 그때 공교롭게도 재생고무로 만든 주걱이 흥부의 뺨에 닿았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까지의 과정은 우연과 우연이 연속된 결과이며 공격적이거나 폭력을 유발할만한 어떤 의도도 포함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흥부도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무단침입으로 고소당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뺨에 입은 타박상을 재생고무 주걱에 붙어있던 밥풀 4개로 합의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물론, 놀부의 변호사가 몹시 유능했다는 점도 순조로운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흥부가 툇마루에서 배고픔을 참으며 우파니샤드파에서 가르치는 무욕과 무위에 관한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뱀과 제비가 건강한 먹이사슬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흥부는 뱀의 저녁식사를 방해했고 뱀은 건전하고 바른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인간 본위의 시각으로 방해받은 것에 대해 정중한 몸짓으로 항의했지만 흥부는 IFWA의 회원이었기에 가여운 제비가 뱀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볼 수 없다는 논리로 뱀의 항의를 일축하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비가 뱀보다 더 우월하다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여러분께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알고 계시겠지만 IFWA의 주요한 업적으로는 귀여운 바다표범을 살리기 위해 에스키모를 파멸로 이끈 것입니다.)

아무려나 뱀이 이 논리를 납득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흥부는 자신의 집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고 뱀은 다소 거친 몸짓으로 그곳을 떠났으며 이 와중에 제비가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흥부는 이 가여운 동물 친구를 위해 예전에 배웠던 ‘전통적인 수의학 강좌’의 가르침을 따라 부목과 붕대를 이용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이 미담은 우연한 기회에 방송국에 알려졌고 흥부는 하루아침에 환경보호의 기수로 각종 TV 프로그램과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각종 보증 선전 수입, 출연료를 받으며 다소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부도 TV를 통해 이 소식을 접했고 축하해줄 만한 이 일에서 그의 반사회적인 경향으로 말미암아 강한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놀부는 자신이 느낀 감정의 당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것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산하는 대신,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인기인이 되리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미지 상담자와 변호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비의 다리에 위해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비용이 드는 실험적인 치료를 비롯하여 완벽한 내과, 외과, 치과, 정신과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최근 제비는 이혼으로 인해 생활에 대한 다소 불안한 심리를 보였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의미로 건강해진 제비는 아무 의사도 표현하지 않고 박씨 하나를 놀부에게 건내 주었습니다. 놀부는 이 보답이 실망스러웠지만 그것을 자신의 기업형 목장 한 켠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놀부의 목장에 아주 거대한 박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놀부의 목장에 대한 온갖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정부가 연구를 제한한 유전자 조작 작물에 관한 소문과 FDA 인증 과정에 있었을지도 모를 비리에 대한 루머가 치명적이었으며 결국 놀부는 목장을 살리기 위해 그의 언론사 주식을 모두 처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놀부는 자신에게 큰 피해를 준 거대한 박에 대해 강한 적개심과 호기심을 품었고 모든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의 인도에 따라 박을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톱질을 시작한지 한참이 지나 박이 반으로 쪼개졌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서 검은 양복에 다소 촌스러운 파란색 넥타이를 맨 중년의 남자가 나왔습니다.

그는 한손에 서류 가방과 계산기를 들고 있었고 상당히 위협적으로 안경을 쓸어 올렸습니다. “놀부씨 댁입니까?” 중년의 남자는 자신이 있는 곳을 알고 있으면서도, 위협적인 어조로 확인하듯 물었습니다. “놀부씨, 전 세무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 암시적인 한마디가 있은 후 이야기는 놀부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세무조사 도중 분식회계가 발각되었고, 이에 주주총회가 열렸으며, 막대한 벌금과 세금의 부과, 주식의 폭락 등의 과정을 지나 주식을 팔아버림으로서 언론의 아무런 비호를 받지 못한 놀부는 완전히 파산하였고 각종 탈세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한편 흥부는 그의 환경전사 이미지를 통해 모은 재산을 이용하여 자녀 수당이 지급되는 나라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수당과 연금을 통해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라고 적어보기는 했습니다만 정치적인 바름에 대해 아무 생각없는 제가 도전하기엔 다소 무모한 과제였던것 같습니다. 어째 정치적으로 바른 동화라기 보다는 법정드라마 필이 강한것 같은데요. 아무려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도록 수련을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아쉬운점이라면 이 분야의 선구자이신 핀 가너씨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다라는 점일까요. 역시 코미디어이란 아무나 할 수 없다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by Tanzwut | 2005/04/30 23:30 | 잡문록 | 트랙백 | 핑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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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슈퍼히로 at 2005/04/30 23:41
너무 감동적이에요. 이런 글이 이오공감에 올라가야 전 이글루 사용자들의 사회학적지식이 늘텐데말이죠. (진담)
Commented by 산왕 at 2005/04/30 23:42
오랜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hmandx at 2005/04/30 23:47
읽는 도중 저는 혹시나 흥부의 수없이 많은 자녀들에 대한 언급이 나올줄 알고 기대 기대했습니다. 국민연금이 흥부의 주택마저 차압했다는 얘기라든지도요. 잘 봤습니다. ^^
Commented by 벨로린 at 2005/04/30 23:49
... 정치란 애초에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가 심히 난해하지 않겠나? 어차피 다수와 소수의 역학관계라는 것이 식자의 평가이리라고 생각되는데.

... 뭐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수사인지 그대는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하네만.

한줄요약 : 그래도 잘 봤심. 니하-
Commented by cruxian at 2005/05/01 00:03
우아아아앗!
흥부놀부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군요. 여러의미에서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글곰 at 2005/05/01 00:06
...역시 Tanzwut 님.
이래서 제가 Tanzwut 님을 좋아합니다. 센스가 돋보이세요.^^
Commented by sori at 2005/05/01 00:36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흥부놀부를 다르게 해석한 재미있는 작품이 또 있는데
'야후'를 그린 윤태호씨의 <연씨별곡>이라고요.
그 작품도 끝내주지요 ^^ 구해보시면 후회는 없으실듯.
Commented by 소마 at 2005/05/01 01:50
정말 가난했던 흥부는 자식들이 모두 살아있었을까요. 아무래도 몇 몇이 굶주림으로 죽었을지도..
그리고 흥부가 수당과 연금이 지급되는 나라로 이민갔다.. 조금은 이기주의라고 생각하네요. 왜 그는 자신이 힘든 시절을 생각하지 않고 이민을 가 모국의 주위 사람들에게 힘든 시절 받았던 은혜를 베풀 결심을 하지 않는걸까요.. 자선을 베푸는 사회풍조도 같이 조성했다라고 하면 좀 더 행복한 결말이 됐을꺼 같아요.^^
그리고 놀부도 제비를 치료하고 나중에 인기를 높일려고 할 때, 재산증식 과정에서 환경파괴를 했던 과거를 찾아 도리어 이미지에 실패했다'라는 내용도 있었으면 하고 상상하는 것도 재밌네요. ^^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렉스 at 2005/05/01 06:47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을터인데..이런 글을 생산해내는 님이 만세입니다. 진정코.
Commented by Tanzwut at 2005/05/01 14:51
슈퍼히로님/ 에에....높게 평가해주신것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만, 많은 분들이 본다면 몹시 부끄러울것 같습니다. 다만 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써주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옛날 이야기가 기대되기는 합니다.

산왕님/ 옙. 오랫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신듯 하여 다행입니다.

hmandx님/ 에...사실 흥부의 미성년 자녀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원전에서 등장하는 미성년 자녀들은 사려깊지 않은 모습들을 많이 보여 미성년자들에 대한 차별이 될까 걱정이 되어 눈물을 머금고 생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농담)

벨로린선배/ 옙. 확실히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란 농담거리밖에 되지 않는 물건입니다. 다만, 그 농담거리로의 활용이 한때 유행이었던 핀 가너씨의 그것처럼 능숙하게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역시 극의의 길은 멀고 먼것 같습니다.

cruxian님/ 에에..분에 넘치는 평가이십니다; 일전에 읽었던 동화책이 떠올라서 끄적여본것입니다만, 즐겁게 읽어주셔서 저 역시 기쁩니다.

글곰님/ 아니, 뭐어.. 성격이 못되어서 악의적으로 해석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칭찬 감사드립니다. 옙.
Commented by Tanzwut at 2005/05/01 14:51
sori님/ 흥부와 놀부는 한국의 동화중에서도 부자가 파멸하는 몇 없는 작품인지라 여러모로 소재의 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씨별곡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추천 감사드립니다.

소마님/ 확실히 흥부의 행동은 이기주의적인 면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흥부가 외국으로 떠난다는 설정은 중산층의 상당한 수가 이민을 희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집어넣어본 것이라서요 나름대로 아쉽지만 사용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놀부가 파멸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론사의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말씀하신 방법을 염두하지 못했습니다. 아깝다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습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옙.

렉스님/ 낮에는 훈련을 뛰고 저녁에는 글을 쓰는 晝鍊夜作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물론, 농담입니다.) 아무려나 여러 취미가 제한이 되기때문에 나름대로 즐겁게 보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중입니다.
Commented by 레저드 at 2005/05/01 23:25
오오 감동적인 글입니다.( ㅜ_ㅜ)
Commented by laystall at 2005/05/02 16:31
(기립박수)
Commented by ひかげ at 2005/05/03 00:15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말 배를 쥐고 웃으면서 봤습니다. 왠지 세무조사를 당한 놀부가 측은해지는 것은[...] 군대에서도 이런 멋진 센스를 발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Commented by 영원제타 at 2005/05/04 17:59
멋진 글인데, 너무 늦게 봤습니다.
놀부가 고위층과 연관이 적었던 모양이군요. 놀부,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
Commented by Tanzwut at 2005/05/07 17:35
레저드님/ 저 역시 조세의 정의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laystall님/ 보내주신 박수가 용감한 환경전사를 위한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농담)

ひかげ님/ 옙. 그간 격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군대 역시 군대 나름의 희노애락이 있기에 나름대로 소소한 농담거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영원제타님/ 사실 놀부는 언론사의 주식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밤의 대통령을 운운할 정도였었습니다만 주식을 매각하여 영향력을 잃자마자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당한것입니다. 참으로 유감천만한 일입니다.
Commented by 조원미 at 2007/09/24 18:01
참 으로 유감천만한 일입니다?(바보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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